Illusion and Reality
Ki Hye-Gyeong: Curator, 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Korea
Ran Hwang produces art works using thread, buttons and beads. After graduating an art college and postponing her pursuit of an art career for a while, she decided to work again as an artist when, as she later told me, she found out that the weight of life is rather heavy.
After determining that she would find her direction of life in art, she went to US for study.
Early in her stay in New York, she worked in fashion industry for a living, and one day, she saw the boxes with full of buttons with a different perspective, and started to produce a series of small-sized, very feminine works. The foreign atmosphere of New York made a significant impact on her art—an impact that changed her work from painting to installation art using new materials like thread, buttons, etc.
Hwang’s earlier works were produced using the common materials found in New York and fashion industry she worked in. During the time, she used a fancy silhouette of a female model, fashion items and women’s accessories as the motif of her works. The characteristic of her early works is shown well in a manikin attached to a frame, a female silhouette decorated with buttons in a box, or drawings of fashion models and accessories. Most of her works at the time were small in size—made up of buttons or beads, or embroidery works using a needle and thread. Her works reflected her own life as a female in Korea and its strong patriarchal culture, and at the same time, she expressed her feminity through glamorous fashion icons.
However, her earlier works were different from traditional feminism art because they were intimately related to the spirit of late 1990’s. Rather than focusing solely on structural contradictions of sex in the society and physiological difference of man and woman, Hwang used images of daily life to create a feminine image in a mass consumption society that touched lightly the desire of women and their feminity.
Although, in her early works, Hwang used buttons and thread because of their material properties, later, she started to pay attention to usualness and universality that those objet would symbolize. The change, which occurred after she witnessed people falling down from the building during 9/11, came from her new perspective on common people that form the society—an understanding that, although common people are trivial like thread and buttons, without them, no society or no art work can exist. Indeed, after her changed perspective, the stitches and buttons started to speak for common people, their membership in the society, and their trivial yet unique lives. Furthermore, the materials she used started to become more than what formed her works—a semee that has a meaning.
The individual unit in her works represents common person as a member of the society, therefore, it demands time just like a common person would require time to have a larger meaning than just a member of the society. Physically speaking, the time can be understood as the time required for hammering down buttons or beads in a panel using pins, however, the time can also be understood as the time required for a human to introspect or reflect her life. In a sense, her works are the results of myriads of careful consideration and reflection of life.
As the meaning of buttons and thread, which represent usualness of mass consumption society, expanded to the meaning of human figures in the society, the amplitude of her works started to have a bigger significance.
After Hwang acquired a different perspective on her materials, her works became sexlessness. Since then, new images like a bird, Buddha and a full moon jar appeared in her works. Indeed, all these works show the modernity encountering Zen Buddhism in her works: A bird encaged in a closed space in her Bird series shows the usualness of modern life though a bird; Buddha meditating under a blossoming plum tree in her Buddha series shows the meaning of existence and non-existence simultaneously; and the empty full moon shape jar in her <Urn> series expresses the emptiness yet filled space.
“Illusion and Reality” exhibition should be understood as the extension of her past work. The only difference is that the artist’s viewpoint of the society has become more sensitive and detailed, and that she is focusing more keenly on the beautiful yet fatal attractions of daily life. In the exhibition, Hwang Ran displays the world full of glamour and lucidity which are “sweet yet fatal.” In this world, there is a tarantula hidden in the bright light of crystal chandelier, a beautiful yet deadly snake under a blossoming plum tree and a desert flower hiding a thorn. In this lovely yet deadly world, we are like birds surrounded by volcanic ash, not knowing where to hide and unable to fly, even when we are aware of the danger of the world and try to avoid it.
Also, the world she created is ambivalent. The ambivalence comes from the images of the works, and, of course, those images come from the materials she uses. This time, she used mainly splendid and shiny materials like shell buttons, crystal balls and beads. Although these materials can be somewhat seem too decorative, when observed closely, it shows the delicate and beautiful manual works of countless hammering, and the glamour and lucidity of these materials are beyond description. To the viewer, the details of her works will create the clever illusion of Zen Buddhism and its curiosity—an illusion that, through ultimate fascination, speaks of meditation which lies in the very opposite of the meditation that we usually experience. Whether it is intended or not, this image is the fundamental characteristic of her works that comes from her use of beads, dyed thread and pins. Truly, this clever illusion can be a slice of modern society, and that is why her works are noteworthy.
In the exhibition, Hwang displays the harsh reality hidden in the beauty, and in her works, we see the tragedy of our lives, our helplessness of not knowing what to do even when we are aware of the danger in our lives. Are her works all pessimistic, then? The artist does not answer the question. Instead she provides a room for the interpretation through Guan Yin (the Buddhist Goddess of mercy) gazing the world calmly. Now, it is up to viewers how to make of this “sweet yet fatal” world.
Supervised by Thalia Vrachopoulos, Ph,D : Music and Art John Jay College of the City University of New York
치명적 아름다움
기혜경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황란은 실, 단추, 핀, 구슬을 작업 재료로 이용하는 작가이다.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붓을 놓았던 그가 다시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작가 스스로 밝히듯 삶의 무게가 녹녹치 않음을 깨닫고, 그것을 내려놓고 싶은 생각이 든 후다.
삶의 방향을 작업 속에서 찾고자 결심한 이후 황란은 늦은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뉴욕체재 초기, 생계를 위해 패션 업계에 몸담은 것이 계기가 되어 어느 날 주변에 무수히 쌓인 단추 상자들을 새 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를 이용하여 규모가 작은 여성적 성향이 강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뉴욕이라 는 낯선 도시는 황란에게 큰 변화를 주었다. 주로 평면적인 회화작업을 주로 하던 그가, 현재까지도 자신의 작업 재 료로 그 영역을 확장하여 실과 단추 등을 발견하고, 이를 이용하여 설치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주로 팬시한 여성 모델의 실루엣이나 패션업계와 관련된 다양한 소재들, 혹은 여성의 액세서리 같은 것을 중요 모티브로 사용한다.
이 시기의 작품 경향은 액자 틀에 인체 모형인 마네킹을 그대로 붙여 작업한 작품부터 작은 박스 형태 속에 여성 의 실루엣을 오려 넣고 단추 등으로 장식한 작품, 혹은 패션모델이나 액세서리의 실루엣을 이용한 드로잉 작업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작업은 대작 보다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작품들이다. 단추와 구슬을 사용하거나, 실과 바늘을 이용하여 한 땀 한 땀 떠 나간 작업, 혹은 실루엣을 오리거나 붙여나가는 작업으로 나뉜다. 황란은 이러한 작업을 통해 가부장적 권한이 강한 한국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반추함과 동시에 패션 아이콘의 화려함을 빌어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주변에 대한 관심에서 여성의 일상을 관통하는 요소인 패션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을 반추하는 행 위는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작품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시기 작업은 페미니즘적 맥락보다는 1990년대 후반이라는 시대 상황과 밀접하게 관계 맺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업 이전 시기의 페미니즘적 맥락과 다른 지점에 놓이게 한다. 그것은 작가가 남성과 여성에 대한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모순이나 생리적 차이에 천착하기보다 자신 주변에 있는 일상적 이미지들을 소화하고 그것을 가벼운 터치로 차용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를 통해 대량 소비사회에서 소비되는 이미지로서의 여성상을 드러내고 동시대 여성의 욕망과 그를 통한 여성성을 표현하고 있다.
초기에 황란이 단추와 실에 주목하게 된 원인이 자신의 주변에서 발견한 단추와 실이 갖는 재료의 속성이었다고 한다면, 이후에는 이들 오브제가 갖는 내용적 측면으로서의 일상성과 보편성에 주목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9.11 사태를 실제 목격한 후 참사를 피하기 위해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인식의 변 화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모두 단추 하나, 실 한 올처럼 비록 보잘것없지만 이렇듯 보잘것없는 보통사람들이 없이는 그 어떤 사회 도, 작품도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너무 흔해서 주목할 만한 대상조차 되지 못한 하나의 단추와 한 올의 실이, 이제 그의 작품에서 한 사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써 보통 사람을 대변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그가 사용하는 재료가 작품을 구성하는 단순한 재료를 넘어 그 자체가 하나의 의미소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황란의 작업에 나타나는 하나의 개별 단위 유닛이 우리 사회의 일원인 보통사람을 의미한다면, 그의 작업을 구성 하는 개개의 유닛은 이 사회에서 갖는 보통 사람의 의미만큼을 작품 속에서 담지하기 위해 시간을 필요로 한다.
물리적으로 말하면 판넬 위에 단추 혹은 비즈를 못으로 두드려 박는 시간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황란의 작업에서 반복되는 두드림의 시간은 한 인간이 사회에서 갖는 숙고와 반추의 시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의 작업은 무수한 반추와 숙고의 과정의 결과물이다.
대량 소비사회의 일상성을 대변하는 재료로써 단추와 실에 대한 인식이 이 세상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인간 군상과 연결되어 확대되면 그것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결과물이 갖는 진폭은 커다란 변화를 띠게 된다. 재료에 대한 인식의 전환 이후, 황란의 작품은 이전 시기와는 달리 중성화되어 나타난다.
이 시기에 새롭게 작업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새나 부처, 달 항아리 등이다. 닫힌 공간 속에서 비상을 꿈꾸는 <새> 시리즈가 드러내는 현대인의 일상성, 머리 위로 가득 핀 매화나무 밑에 참선하고 앉은 <부처> 시리즈가 드러내는 존 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써의 부처의 의미를 나타낸다. 혹은 비어있으되 차있는 공(空)의 상태를 빈 공간과 찬 공간의 반전을 통해 드러내는 <달 항아리> 시리즈는 말 그대로 그의 작품이 현대성과 그 너머의 동양적인 선사상과 만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이상과 같은 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전시 을 살필 수 있다. 전과 차이가 있다면 작가가 우 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좀 더 예민하고 섬세해졌으며 유독 우리 주변의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한 것 들이 주는 피할 수 없는 유혹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황란은 이번 전시에서 ‘달콤하지만 살벌한’ 것들로 이루어진 이 세상을 화려하면서도 영롱한 빛으로 반짝이는 세계 속에 펼쳐 보이고 있다. 작가가 드러내는 이 세계는 크리스털 샹들리에의 흔들리는 불빛 속에 몸을 숨긴 독거미 가 있는가 하면, 흐드러지게 핀 홍매 속에 몸을 틀고 있는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뱀이 있고, 사막의 꽃들이 감춘 가시 가 있는 세계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게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세계에 매몰되어 살지만 이러한 위험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를 피하려고 노력 하는 때조차 피어오르는 화산재에 갇혀 어디로 가야할지 분간 못한 채 비상하지 못하는 새와 같은 존재일 뿐이다.
황란이 이번 전시를 통해 이루어 놓은 세계는 양가적이다. 이러한 양가성은 작품의 이미지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다시 그가 다루는 재료에서 연유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로 자개 단추, 크리스털 볼, 비즈처럼 화려하면서도 영롱 함을 기본 요소로 삼는 재료를 주로 이용하는 그의 작품은 자칫 장식적으로 보일 위험마저 내포하고 있다. 그의 작품 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굉장한 횟수의 망치질을 바탕으로 한 정교한 수작업의 결실이라는 점과 더불어 작품의 재료 가 갖는 화려함과 영롱함에 놀람을 금치 못하게 된다.
작품의 세부를 통해 드러나는 이러한 특징은 그가 다루는 동양적인 선의 세계를 화두로 던지는 작품의 내용과 교차되면서 관자로 하여금 작품에 대한 교묘한 착종을 일으키게 한다. 그것은 명상을 이야기하되 명상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지는, 장식적인 화려함의 극치를 통해 그 반대편에 있다고 평해지는 명상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결과는 작가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가 단추와 구슬, 색실, 그리고 그것들을 연결하는 고리로 핀을 선택하는 순간 작 품이 갖게 된 근본적 특징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반되는 착종현상은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현대사회의 단면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을 주목하게 한다.
너무 아름다워 부지불식간에 다가갔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 황란은 그 이면에 감춰진 살벌하면서도 냉혹한 현실을 드러낸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들 대부분은 그러한 위험을 감지하지도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위험을 감지했다 하더라도 이미 어쩌지 못할 상황에 놓여 있음을 발견하게 한다. 그렇다면, 황란의 작품은 비관적이기만 한 것일까? 대답을 대신하여 작가는 세상의 모든 것을 고요히 지켜보는 물가의 수류관음을 통해 이 상황에 대한 해석을 열어 놓고, 해석의 여지를 관객 각자에게 맡기고 있다.
이제 ‘달콤하지만 살벌한’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관객의 몫이 되었다.